수학 과외
큰 아이의 수학 점수가 바닥을 긴다는 아내의 첩보를 접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 동안은 (가만 두면 지가 알아서 다 할거라는) 내 말만 믿고 학원도 보내지 않았는데, 이제 어떡하면 좋냐고 그런다.
아내가 아이를 살살 꼬셔서 서점에서 수학 문제집 하나는 사다가 놓았지만, 몇 주째 책상 위에서 먼지만 날리고 있다. 그렇다고 애를 억지로 앉혀놓고 수학을 가르치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이라 해서는 안된다. 아내의 무언의 눈빛도 있고 왠지 모를 압박감에 며칠 동안 좌뇌와 우뇌를 굴린 결과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 내었다. 아이와 함께 아이의 친한 친구를 불러서 둘을 같이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그건 아이도 좋다고 한다. 아이 친구도 OK를 해서 그쪽 부모님께도 확인을 받은 후 수학과외를 시작하게 되었다.
교재는 한달 전쯤 아내가 사다 놓았던 그 문제집이다. 당장 이번 주부터 수업이라 빼도 박도 못하고 문제집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고 있는데, 갑자기 후회가 물밀듯이 몰려든다. 이제 물 마시러 가기도 귀찮은 나이인데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싶고 애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옛날에 대학 다닐 때 학생들을 가르치긴 했었지만 수십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래도 이왕 하기로 한 거 마음을 다잡고 계획표도 짜고 수업 전략도 짜 본다.
먼저 수업계획표에서는 수업의 목표와 수업 중 같이 지켜야할 사항을 정해 보았다. (첫날 아이들에게 프린트로 나눠줌)
XX 수학방 - 목표: 수학이 재밌어지기 - 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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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훈은 매 수업 시작할 때 아이들에게 선창하게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은 나만의 방훈이 있는데, 그건 '평가하지 않기'이다. 참고로 아이들은 중학생이다.
수업 진행은 먼저 지난 시간에 배운 주요 개념을 확인(되새김)한 후 숙제 확인을 한다. 숙제 확인은 각자 숙제로 풀어온 문제들 중에서 틀렸거나 잘 모르겠다고 체크해 온 문제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이가 나는 경우에는 잘 풀어온 친구보고 앞에 나가서 본인이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해 달라고 한다. 앞에 미니칠판을 하나 놓고 수업을 하는데, 문제 풀이를 알려달라고 하면 자꾸 나에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면, '아니야, 친구에서 설명해 주는거야.' 하고 정정해 준다. 그리고, 문제를 체크해 온 아이에게는 친구의 설명을 잘 들어보라고 한다. 둘다 모르겠다고 체크한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해 준다.
숙제 맞춰보고 서로 설명해 주고, 또 오늘 배울 개념 설명하고 한 두 문제 풀어주다 보면 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금방 간다. 수업은 일주일에 딱 1시간만 하기로 해서 수업하다가 1시간이 되면 무조건 멈추고 나머지 문제들은 모두 숙제로 내준다 (ㅋㅋ). 사실 내가 혼자 열심히 설명하고 문제를 풀어준다고 해서 애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이제 수업을 시작한지는 한 달쯤 지났다. 한 달쯤 지켜보니 두 아이의 특성이 확연히 다름이 느껴진다. 한 아이는 학원을 많이 다녔고 지금도 다니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문제를 이미 알고 있고 문제 풀이도 제법 잘 해낸다. 하지만 개념을 설명해 보라든가 친구에게 문제풀이를 설명해 주라고 하면 당황해하고 어려워한다. 반면에 한 아이는 학원을 다닌 적이 없고 문제를 효과적으로 푸는 방법도 잘 모른다. 하지만 개념을 설명하거나 본인이 이해한 문제에 대해서는 설명을 잘 해낸다. 두 아이 모두 내게는 숙제이다. 첫 번째 아이는 익숙함 속에서 의문을 갖도록 하는 게 숙제이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에게는 개념만으로도 수학 문제 풀이가 가능하며 그 과정이 수학임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
수업을 하면서 애들에게 해 준 말이 있다. '문제 많이 풀고 답 맞추는 것이 수학공부가 아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 그리고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진정한 수학 공부다'.
수업시간에 한 두 문제 더 푸는 것보다도 이런 것들을 애들에게 조금씩 느끼게 해 주고 싶다. 그러려면 나 자신부터 조급함을 버리고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크 프로그래머